인포그래픽의 진화와 국내외 우수 사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숫자와 도표가 가득한 보고서를 읽기보다, 한 장의 이미지로 핵심을 파악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복잡한 수치를 정리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인포그래픽’은 이제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보의 흐름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지금, 데이터를 시각화한다는 것은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명확성과 신뢰성, 그리고 공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 지금, 인포그래픽인가?
우리는 매일같이 방대한 데이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수치가 의미 있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정보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하고 ‘맥락화’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인포그래픽이 빛을 발합니다.
데이터를 단순히 시각화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보 간의 관계와 흐름, 그리고 정책적 함의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공공 기관, 국제기구, 금융기관 등에서는 신뢰도 높은 정보 전달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인포그래픽을 적극 도입하고 있습니다.
사례 ① 통계청 – 인포그래픽으로 국민에게 말 걸기
통계청은 매년 방대한 통계자료를 수집하고 발표합니다. 예전에는 수십 페이지짜리 보고서에 의존하던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통계 바로보기’ 시리즈를 통해 인포그래픽 중심의 요약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년 고용동향’이나 ‘가구 구성 변화’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주제들은 도표와 아이콘, 짧은 해설 문장을 결합해 SNS에서도 쉽게 공유될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이러한 콘텐츠는 교육자료로도 활용될 만큼 정보의 교육적 확산력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은 또 홈페이지 내 ‘인포그래픽 자료실’을 따로 운영하며, 사용자들이 관심 있는 주제를 찾아볼 수 있도록 주제별, 연도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개방과 이용자의 자발적 탐색을 동시에 고려한 사례입니다.
사례 ② 한국은행 – 복잡한 금융정보의 해석 도구
중앙은행이 다루는 정보는 전문성이 높고, 일반 국민에게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은행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동향·통화정책·물가지표 등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픽 리포트를 지속적으로 제작해 왔습니다.
특히 ‘물가안정목표 운영체계’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 필요성’ 등처럼 관심은 높지만 이해가 어려운 주제는, 인포그래픽을 통해 구조화된 내러티브로 풀어내는 방식이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제작된 ‘청소년을 위한 금융교육 인포그래픽’ 시리즈는 그래픽 노블의 형식을 빌려 몰입도와 친근감을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정보의 시각화’를 넘어서 이해의 동기 부여까지 고려한 콘텐츠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례 ③ WHO와 OECD – 글로벌 보건 이슈와 정책 데이터 시각화
국제기구에서는 국경을 넘어 누구에게나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입니다. WHO와 OECD는 이를 잘 실현한 대표 기관입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백신 접종률’, ‘감염병 확산 경로’, ‘비만과 만성질환의 국가 별 비교’ 등 다양한 보건 데이터를 시각화 하여 세계 각국의 정책 수립에 실질적인 참고 자료를 제공합니다.
특히 팬데믹 기간 중 WHO가 제작한 ‘COVID-19 예방 수칙 인포그래픽’은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아이콘 기반의 직관적 커뮤니케이션을 선택해 언어 장벽을 효과적으로 해소한 대표적인 콘텐츠였습니다. 결과적으로 WHO 콘텐츠는 각국 보건부가 별도 번역 없이 그대로 차용하거나 재 가공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OECD는 ‘국가별 교육지표’, ‘성별 고용 격차’, ‘복지지출 비중’ 등 주요 사회 지표를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 형태로 제공하여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를 조작해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합니다.
이는 데이터 탐색 과정 자체를 콘텐츠 경험으로 전환한 진화 된 인포그래픽 활용입니다.
인포그래픽,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좋은 인포그래픽은 예쁜 그림이 아닙니다. 정확한 데이터 이해, 논리적 구조 설계, 시각적 몰입도, 그리고 전달 대상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함께 결합되어야 비로소 성과를 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 부터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목표의 명확한 설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인포그래픽이 데이터의 왜곡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수치의 출처와 기준, 시각화 방식의 정직성 역시 항상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특히 공공 기관이나 국제기구의 경우, 정보의 신뢰도가 정책 수용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방향 : 데이터 리터러시(문해력)를 높이는 디자인
인포그래픽의 최종 목적은 ‘이해’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시민 스스로가 데이터를 읽고, 해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데이터를 받기만 하는 수용자가 아니라, 함께 질문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용자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외 기관들이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앞으로도 데이터 기반 정책의 시대에서, 인포그래픽은 단지 한 장의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과 사회를 잇는 다리이자, 소통의 기술로 계속 진화해 나갈 것입니다.